'비건 뷰티'지만 화장품 공병은 그대로, 제로웨이스트 실천법은?
최근 몇 년 사이, 환경과 동물 복지를 고려한 ‘비건 뷰티’ 제품이 뷰티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배제한 화장품은 분명 윤리적 소비의 방향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소비가 실질적인 환경 보호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포장재, 플라스틱 용기, 복합 소재 튜브, 펌프, 공병…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화장품 하나하나가 남기는 ‘포장 쓰레기’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다. 비건 인증 마크를 받은 제품을 쓰면서도, 다 쓴 공병은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일상인 소비자들. 이 모순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 온 ‘화장품 공병 문제’를 다시 직시하게 만든다.
‘비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
비건 뷰티가 주목받는 시대지만, 정작 제품이 다 쓰이고 난 후의 행방은 소비자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비건 인증 마크가 박힌 고급스러운 플라스틱 용기, 재활용이 어려운 튜브형 제품, 뚜껑과 몸체가 서로 다른 소재로 이루어진 패키지들… 이 모든 것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국내 화장품 업계는 매년 수백 톤 이상의 공병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화장품 용기의 대부분은 재활용이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펌프형 로션 용기, 쿠션 팩트 케이스, 튜브형 자외선 차단제는 소재 혼합도가 높아 자동 선별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브랜드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고급스럽고 무거운 패키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유리와 금속, 플라스틱을 복합적으로 사용한 용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소비자에게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줄 수 있지만, 분리배출과 재활용 측면에서는 ‘악성 쓰레기’로 전락하기 쉽다.
화장대를 점령한 폐기물,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면
화장대 위에는 각기 다른 브랜드의 스킨, 에센스, 선크림, 립밤, 쿠션 등 다양한 제품이 놓여 있다. 이 중 몇 개나 제대로 분리배출되고 있을까? 대부분의 소비자는 바쁘고 복잡한 분리배출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뚜껑을 따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리필이 가능한 제품조차 리필팩조차 비닐과 알루미늄이 혼합된 형태로 되어 있어, 재활용률이 매우 낮다. 이처럼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 그대로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이 만드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존재한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화장품 소비 습관
첫째, 재사용 가능한 용기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몇몇 브랜드에서는 유리 용기 제품을 선보이며, 매장으로 가져오면 공병을 회수하거나 리필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러쉬(Lush), 아로마티카(Aromatica), 이니스프리, 아베다(Aveda) 등의 브랜드는 이미 오프라인 매장에서 공병 수거 및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면 단순히 포인트를 적립하는 것을 넘어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미니멀한 스킨케어 루틴을 지향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초 5단계를 넘는 화장품 루틴은 피부에 부담일 뿐 아니라, 제품 소비와 쓰레기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스킵케어(skip-care)’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제로웨이스트와 맞닿아 있다.
셋째, 리필이 가능한 제품을 구매하거나,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벌크 스킨케어’, ‘리필형 토너’ 등의 제품은 불필요한 용기 생산을 줄일 수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는 리필 뷰티숍은 이제 더 이상 멀고 낯선 개념이 아니다.
넷째, 정기적인 공병 정리와 분리배출 습관도 필요하다. 제품을 다 쓴 뒤에는 흐르는 물에 내부를 깨끗이 헹구고, 라벨과 펌프, 용기를 분리한 후 각각 적절한 방식으로 배출해야 한다. 쓰레기는 분리수거보다 ‘분리배출’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브랜드도 바뀌고 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브랜드 차원의 변화도 눈에 띄고 있다.
헤라(HERA)는 ‘리필 가능한 쿠션’을 출시해 패키지를 교체하지 않고 내용물만 바꿔 쓸 수 있도록 했다.
아로마티카는 브랜드 자체적으로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며, 내용물만 다시 채워 구매할 수 있게 했고, 이니스프리는 한때 공병 수거 프로그램을 중단했으나, 소비자 요청에 따라 이를 다시 도입하고 있다.
러쉬는 검은색 플라스틱 용기 5개를 반납하면 신제품을 증정하는 등 폐기물 회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에코 패키지’와 같은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거나, 생분해성 소재로 대체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일회용 위주의 소비 패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점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제품은 ‘예쁘고 고급스러운 패키지’에 소비자의 시선을 의존하고 있다. 소비자 스스로 이러한 소비의 흐름을 인식하고, 자신의 선택이 무엇을 지지하는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는 뷰티 트렌드의 주체다
화장품 공병 문제는 단지 쓰레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고, 어떤 소비 방식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생산과 유통, 폐기까지의 전 과정이 바뀔 수 있는 구조다. 비건 뷰티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의 윤리적 감수성을 높였듯, 이제는 ‘제로웨이스트 뷰티’라는 실천적 개념이 필요하다.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행위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뷰티는 더 이상 사치나 낭비가 아니라 책임 있는 소비의 한 방식이 된다.
화장품을 고를 때 이제는 성분만 볼 게 아니라, 용기의 재질, 리필 가능성,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 전략까지 살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클린 뷰티’의 완성이다.
결론 : 작지만 확실한 변화, 나의 뷰티 루틴에서부터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화장품을 고를 때 리필 가능한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다 쓴 공병을 분리배출하기 위해 조금만 시간을 내는 것, 매달 한 개라도 덜 사보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야 제로웨이스트는 현실이 된다.
이제 우리는 화장품을 통해 더 예뻐지는 것뿐 아니라, 더 지속 가능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선택도 할 수 있다. 유행하는 뷰티 트렌드를 따르는 것만큼, 지속 가능한 소비를 이끄는 트렌드세터가 되는 것도 충분히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