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더 이상 한국만의 음악이 아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세계 각국의 차트를 점령하고, 글로벌 투어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뷰티, 춤, 콘텐츠까지 아우르며 K-컬처의 중심축이 된 K-POP은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자 경제적 효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찬란한 성공 뒤에는 우리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 특히 환경과 자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앨범’이다.
K-POP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랜덤 포토카드 때문에 앨범을 여러 장 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또는 팬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수십 장의 앨범을 사들이는 문화는 이제 K-POP 소비 방식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로 인해 포토카드만 빼고 버려지는 수많은 앨범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는 곧 엄청난 양의 쓰레기로 이어지고 있다.
포토카드 문화가 남긴 환경 비용
앨범 판매량은 여전히 K-POP 산업의 핵심 성과 지표다. 초동(첫 주 판매량) 기록이 중요시되며, 이 기록을 높이기 위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팬덤 문화도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작 음악은 디지털로 듣고, 앨범은 개봉조차 하지 않은 채 폐기된다는 점이다.
특히 인기 아이돌 그룹의 팬사인회는 앨범 구매 수량이 당첨 확률과 직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1인당 수십에서 수백 장의 앨범 구매로 이어지며, 버려지는 앨범도 그만큼 많아진다. 포토카드와 당첨 영수증만 남고, 책자, CD, 포장재 등은 쓰레기로 전락하는 현실은 K-POP이 겪고 있는 대표적인 '과잉 생산·과잉 소비' 구조다.
2022년 한 해 동안 발매된 K-POP 앨범은 약 8천만 장 이상이었다. 이 중 얼마나 많은 앨범이 음악 감상용이 아닌 포토카드 수집용, 이벤트용으로 구매되었고, 또 얼마나 많은 물리적 자원이 불필요하게 소비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앨범 제작에는 종이, 잉크, CD 플라스틱, 포장 비닐 등 다양한 자원이 소모된다. 특히 디스크에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는 분해에 수백 년이 걸리는 소재로, 일단 폐기되면 회수나 재활용이 쉽지 않다. 이처럼 한 번 쓰이고 사라지는 콘텐츠가 만든 환경 발자국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소속사들의 친환경 실험과 변화
다행히 최근 몇몇 소속사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친환경 패키징과 재생 소재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하이브(HYBE)는 2023년부터 일부 앨범에 디지털 키트(Weverse Album)를 도입해 실물 없이 음악과 포토북, 영상 등을 모바일 앱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실험했다. 이는 실물 앨범의 생산을 줄이고, 동시에 팬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수집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SM엔터테인먼트 또한 일부 앨범 패키지에 FSC 인증 종이와 식물성 잉크를 사용하며, 일회용 포장재 대신 재사용 가능한 소재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아예 앨범 내 포토카드만 디지털로 제공하는 모델도 테스트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전체 앨범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시도이지만, K-POP 산업 전반에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제작 방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팬들도 점점 ‘소장 목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콘텐츠를 원하고, 환경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아티스트와 기업을 지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팬들의 자발적인 실천과 연대
놀라운 건 팬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팬덤은 앨범을 기부하거나, 포토카드만 얻은 뒤 남는 앨범을 학교·도서관에 기증하거나, 리사이클링 업체에 위탁하기도 한다.
또한 팬클럽 차원에서 앨범 공동 구매 후 재분배, 공연장 주변 쓰레기 줍기 캠페인, 친환경 굿즈 제작 등 자발적인 환경 실천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블랙핑크 월드투어 당시에는 일부 팬들이 공연이 끝난 후 쓰레기를 수거하고, SNS에 #클린콘서트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 사진을 올리는 움직임이 퍼졌다. 이런 흐름은 해외 팬덤에도 영향을 주어, 일본, 유럽 등지에서도 ‘팬 문화 속 환경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국내 일부 팬 사이트에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친환경을 고려한 응원 프로젝트를 준비하기도 한다. 대형 현수막이나 일회용 슬로건 대신, 디지털 응원 게시판, SMS 응원 메시지, 공공 디지털 광고판 등을 활용해 자원 소비를 최소화하는 새로운 응원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환경을 위한 실천일 뿐만 아니라, 팬 문화 자체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소비에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와 함께 ‘가치를 공유’하고 ‘의미 있는 소비’를 실천하려는 태도는 K-POP 문화의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케이팝이 만들어야 할 미래
K-POP은 이미 세계적인 산업이다. 음악 콘텐츠의 퀄리티, 아티스트의 역량, 팬덤의 힘 모두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화려한 기록’과 ‘판매량’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진짜 세계적인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있는 생산, 소비, 폐기 전 과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음반은 음악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원 소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포토카드는 팬과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만을 위해 수십 개의 패키지가 소비되고 버려지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콘텐츠 제작자, 소속사, 유통사, 팬 모두가 함께 ‘지속 가능한 K-POP 생태계’를 고민할 때다. 팬의 사랑을 환경까지 확장시키는 문화, 쓰레기보다 감동이 남는 콘서트, 의미 있는 수집이 가능한 앨범—이 모든 것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K-POP이 지금처럼 세계를 움직이려면, 음악만큼이나 문화 전반의 윤리성과 책임감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 모두가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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