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과 겨울, SNS 피드가 특정 브랜드의 텀블러와 머그잔 사진으로 도배되는 시기가 있다. 특히 스타벅스를 비롯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크리스마스나 체리블라썸 시즌이 되면 한정판 굿즈를 앞세워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이는 단순한 텀블러나 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브랜드와 콜라보한 캐릭터 디자인, 계절 한정 아이템이라는 희소성이 결합되며, 일부 제품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웃돈까지 얹어 팔린다.
스타벅스의 굿즈는 이제 ‘오픈런’이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새벽부터 줄을 서거나 매장 오픈 전에 사람들로 길게 늘어선 줄은 마치 명품 브랜드의 신제품을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상케 한다. 브랜드 굿즈가 이토록 큰 관심을 받는 배경에는 ‘소장’ 혹은 ‘수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 심리가 작용한다. 하지만 이 소비는 정말 환경 친화적일까?
텀블러를 사는 이유, 진짜 환경을 위한 소비일까?
텀블러와 머그잔은 원래 ‘일회용 컵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제품이다. 하지만 지금의 카페 굿즈는 기능보다 소유의 목적이 우선시 되고 있다. 시즌마다 나오는 수많은 굿즈를 모으는 이들은 이를 실사용하지 않고 장식용으로만 보관하거나, 때로는 새 상품 상태 그대로 다시 중고로 거래하곤 한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도구였던 텀블러가 되려 과잉 소비의 대표 아이템으로 전락한 것이다.
특히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내놓는 텀블러 제품들은 대부분 합성수지, 실리콘, 금속, 플라스틱 등의 복합 소재로 구성돼 재활용도 어렵다. 기능적으로는 뛰어나더라도 폐기 단계에서 자원 순환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꼭 맞는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굿즈들은 포장에도 많은 자원을 사용한다. 제품을 담는 종이상자, 플라스틱 포장재, 스티커, 포장 비닐 등은 일반 소비자가 분리수거하기 쉽지 않으며, 다수가 일반 쓰레기로 배출된다. 이런 포장 폐기물은 카페 한 매장에서 하루에 수십 건씩 발생하기도 한다.
캐릭터 협업, 귀여움의 마케팅이 남긴 흔적
최근에는 스타벅스 외에도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할리스, 이디야 등 국내 주요 카페 브랜드들이 각각 캐릭터와의 콜라보 굿즈를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카카오프렌즈, 산리오, 스누피, 무민, 마리몬드 등 브랜드 친화적이고 팬덤이 강한 캐릭터들이 굿즈에 적용되면서, 소비자는 단지 음료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굿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음료를 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한정판이라는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에게 시간 압박과 경쟁심리를 동시에 자극하고, 이는 과잉 구매로 이어진다. 예컨대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굿즈 증정 이벤트를 할 경우, 소비자는 필요 이상의 음료나 디저트를 구매해 버리기 쉽다. 이는 남은 음식물과 포장 쓰레기를 늘리는 또 하나의 환경 비용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굿즈를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별도의 플라스틱 포장에 담긴 채로 제공되며, 매장에서 실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모든 흐름은 “재사용 가능한 제품이 일회용처럼 소비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귀여움은 중요하지만, 그 이면의 자원 낭비를 외면할 수는 없다.
소비자는 즐기고, 지구는 고통받는다
문제는 굿즈 자체보다 그 소비 방식에 있다. 예쁘고 트렌디한 굿즈는 SNS 인증 욕구를 자극하고, 자극된 욕구는 구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구매는 다시 ‘쌓이는 굿즈’와 ‘쌓이는 쓰레기’로 귀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시즌마다 새로운 텀블러를 사고, 지난 시즌 굿즈는 방치되거나 버려진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겠다며 산 텀블러가 오히려 새로운 폐기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2023년 환경운동연합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벅스 매장에서만 한 해 동안 약 250만 개의 텀블러가 판매되며, 그중 실제로 일상적으로 재사용되는 비율은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장식용이거나, 새 제품 상태로 중고거래 시장에 넘겨진다. 이는 곧 ‘지속 가능한 소비’라는 브랜드 마케팅 이미지와는 달리, 현실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텀블러가 만들어지는 공정 자체도 환경에 부담을 준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생산 과정에서 상당한 탄소를 배출하며, 다양한 도료와 인쇄 기술은 공해 물질을 유발한다. 제품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총 환경비용(LCA)을 고려한다면, 그 텀블러를 최소 수백 번 이상 써야만 환경적 의미가 생긴다. 결국 문제는 ‘하나를 오래 쓰는 것’이지, ‘예쁜 것을 자주 바꾸는 것’이 아니다.
대안은 없는가? 브랜드와 소비자의 공동 책임
다행히 몇몇 브랜드는 점차 친환경적인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22년부터 텀블러를 가져오면 일정 금액을 할인해 주는 ‘리유저블 컵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매장에서는 다회용 컵 대여 프로그램(컵어스)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 역시 리유저블 컵 사용을 늘리기 위한 할인 제도를 도입했고, 굿즈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브랜드가 변화한다 해도 소비자가 ‘굿즈는 수집용’이라는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실제 환경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인 해결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자발적 변화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는 다음 시즌 굿즈가 나왔을 때, ‘이미 가진 텀블러로 충분하지 않은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또한 중고 굿즈 거래 플랫폼에서 재사용률을 높이고, 가정 내 방치된 텀블러를 기부하거나 교환하는 문화도 활성화될 수 있다.
브랜드는 시즌 굿즈 출시 대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표준 디자인 텀블러에 리필 옵션 제공, 텀블러 리싸이클 프로그램 등을 도입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제로웨이스트란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쓰레기를 의식적으로 줄이는 삶을 뜻한다.
예쁜 굿즈 하나쯤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매 시즌 반복되는 소비, 쓰지 않는 제품의 수집, 필요 이상의 포장 폐기물은 더 이상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앞으로의 소비는 더 똑똑해져야 한다. 브랜드가 친환경 캠페인을 한다면 그 배경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을 책임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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