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도시가 깨끗한 이유? ‘제로웨이스트 디자인 도시’ 싱가포르를 읽다

evrdaysc 2025. 7. 23. 00:46

쓰레기가 사라진 도시, 어떻게 가능한 걸까?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가는 도시에는 언제나 일정한 양의 쓰레기가 존재한다. 거리 곳곳에 흘러나온 플라스틱 컵, 주차장 구석에 쌓인 종이박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골목에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 등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많은 도시가 매일 수많은 인력과 예산을 들여 청결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생활 쓰레기’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게 깨끗한 도시가 있다. 바로 싱가포르다. 이곳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정말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도로에 떨어진 담배꽁초 하나 없고, 공원 벤치 주변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쓰레기통 주변조차도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된다. 일시적인 청소나 전시 행정이 아니라, 마치 도시에 '청결'이라는 가치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듯하다. 그런 도시를 보고 있자면 궁금해진다. 정말 단속과 시민 의식만으로 이런 수준이 가능한 걸까?

많은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청결을 ‘벌금 때문’ 혹은 ‘시민의식 수준’으로 설명한다.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도시가 ‘제로웨이스트 디자인’의 개념을 도시 전반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면, 단순히 시민 개개인의 자제력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함부로 버릴 수 없도록, 그리고 잘 버릴 수 있도록 설계된 이 도시는 도시계획 차원에서 ‘청결’을 전략적으로 접근한 대표 사례다.

제로웨이스트-도시-싱가포르

벌금보다 강력한 ‘디자인된 도시 구조’

싱가포르가 쓰레기 없는 도시로 불리는 데는 ‘규제’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이 도시는 무단 투기나 공공장소에서의 침 뱉기, 껌 씹기와 같은 행동에 대해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가령 담배꽁초 하나를 거리에서 무심코 버리면 1,000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100만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되며, 반복 위반 시에는 ‘공공장소 청소 봉사’라는 실질적 제재도 병행된다. 그 외에도 지정된 장소 외에서 껌을 씹거나 판매하는 행위조차 금지되어 있어, 생활 전반에 걸쳐 '청결'을 유지하려는 법적 장치가 촘촘히 마련돼 있다.

하지만 도시 전체의 청결이 단속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거나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도시 설계의 힘이다. 예컨대 쓰레기통은 도심 곳곳에 있지만 과도하게 많지는 않다. 단순히 ‘보이면 버린다’는 심리 대신, ‘정해진 장소에 가야 버릴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도록 공간이 설계돼 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쓰레기를 한동안 가지고 다니다가 정해진 장소에서 분리배출하게 되며, 이는 무심코 버리는 행위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청소 인력도 단순한 ‘노동자’가 아닌,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는 ‘유지 요원’처럼 배치된다. 주거 단지, 상업 지역, 관광지 등 지역의 특성과 유동 인구에 따라 세분화된 청소 전략이 적용되며, 각 인력은 지정된 시간에 정해진 공간을 책임지는 시스템 속에서 일한다. 이는 단순한 청소의 효율을 넘어서, 시민들에게 ‘도시는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관리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도 갖는다.

 

무단 투기를 어렵게 만든 골목과 공간의 차이

도시의 청결은 단지 메인 도로나 공공광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쓰레기 문제는 잘 보이지 않는 공간, 즉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도시 구조를 보면, 이런 공간들이 철저히 통제되고 설계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 단지(HDB)의 경우, 쓰레기 무단 투기가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주차장과 연결되는 복도는 개방형 구조를 통해 자연 감시가 가능하도록 했고, 폐쇄된 골목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통로는 곡선이나 급격한 굴곡 없이 시야가 확보되도록 배치돼 있다. 감시 카메라의 설치와 상관없이 ‘사람이 보고 있을 수 있다’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또한 각 단지 내에는 분리배출 공간이 잘 정비돼 있으며,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재활용품을 분리해 놓을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 수거함과 시각적으로 구분되는 안내판이 함께 제공된다. 안내판에는 이미지와 함께 각종 재활용품의 배출 기준이 명확히 설명되어 있어, 어르신이나 외국인 거주자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도시의 물리적 구조가 시민 개개인의 실천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구조로 짜여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시민 의식보다 먼저 작동하는 시스템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는 “도시가 깨끗한 건 시민 의식이 높아서”라는 말이다. 물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과 책임감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이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경험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싱가포르는 ‘좋은 의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 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유도한다. 쓰레기를 몰래 버릴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쓰레기를 버릴 타이밍이 명확히 존재하며, 잘못된 배출은 곧바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즉, 도시 자체가 ‘선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고 ‘나쁜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일종의 환경심리학적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택한다. 만약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구조라면,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반대로 구조적으로 ‘버릴 수 없는 조건’이 조성되면, 그 행위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설계된 심리 유도다. 강제보다는 유도, 감시보다는 참여, 단속보다는 구조가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 도시들이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지점

한국은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의 의식이나 노력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한 신고 포상제, 감시카메라 설치, 벌금 강화 등의 정책도 추진되고 있지만, 도시 전반의 구조는 여전히 ‘버리기 쉬운’ 환경으로 되어 있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 공간은 접근이 불편하거나 어두운 구석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고, 골목길은 폐쇄적 구조로 되어 있어 불법 투기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공공장소에 설치된 쓰레기통은 수가 부족하거나, 오염된 채로 방치되어 있어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민이 좋은 선택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 존재하는 한, 의식 개선만으로는 도시의 청결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도시들도 이제는 물리적 환경, 즉 도시계획 차원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건물 설계부터 공공공간 디자인, 쓰레기통 위치 선정, 분리배출 공간의 시각적 구성 등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시민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그 책임이 실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도시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