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소비하며 쓰레기를 남기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은 전시회 관람이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미술관은 물론, 브랜드 체험전과 팝업스토어까지 다양한 형태의 전시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성수동을 비롯한 핫플레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팝업 전시가 생겨난다. 관람객은 새로운 트렌드를 경험하고 SNS에 인증하며, 브랜드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윈-윈 구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쌓이고 있다.
전시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양한 홍보물을 손에 쥔다. 포스터, 브로슈어, 엽서형 리플릿, 기념 굿즈까지.
이 중 일부는 소장 가치가 있지만 대부분은 집으로 가져가기도 애매한 애매한 홍보물들이다. 종종 플라스틱 포장지에 담겨 있거나, PVC 소재로 만들어져 분리배출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전시는 끝났지만, 이 홍보물들은 쓰레기로 남는다. 문제는 이게 특정 전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주 열리는 수많은 전시와 팝업 행사들이 그때마다 새롭게 제작된 물성 중심의 홍보물과 굿즈를 동반하면서, ‘문화 소비’라는 이름 아래 엄청난 양의 일회성 폐기물이 쏟아지고 있다. 관람객은 무심코 받아 들지만, 환경에는 결코 무해하지 않은 선택이다.
예술의 감동 뒤는 수많은 인쇄물의 그림자가 있다
전시 기획자 입장에서 포스터와 브로슈어는 필수적인 요소다. 행사 정보를 알리고, 예술가의 철학이나 작품 해설을 담아 관람객에게 보다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모든 관람객이 이를 꼼꼼히 읽고 보관하지는 않는다. 수천 장씩 인쇄된 브로슈어가 관람 종료 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모습은 드문 일이 아니다.
브랜드 팝업스토어나 체험형 전시에서는 ‘사진 찍기 좋은 굿즈’가 핵심이다. PVC로 된 엽서, 아크릴 키링, 폴리백,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 등이 기본처럼 배포된다. 심지어 포장에도 과한 정성이 들어간다. 접착이 불가능한 이중 플라스틱, 실링 된 비닐 포장, 부직포 파우치까지—사용자는 잠시 기분이 좋을 수 있지만, 실질적인 필요성은 의문이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예술계의 메시지와, 마케팅을 위해 과도하게 제작된 인쇄물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아름다운 전시를 만들기 위해 환경을 훼손하는 역설은 이제 고민 없이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성수동 팝업스토어, 트렌드인가 쓰레기 생산 공장인가?
서울 성수동은 요즘 가장 ‘힙한’ 장소 중 하나다. 유명 브랜드는 물론이고 떠오르는 로컬 브랜드들까지 성수에 만큼은 ‘팝업을 열어야 한다’는 공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성수의 트렌디함 뒤에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매일 바뀌는 듯한 거리의 외관, 컬러풀한 간판과 배너, 다양한 이벤트 굿즈는 대부분 며칠 혹은 몇 주 후면 사라진다. 임시 구조물로 꾸며진 공간들은 철거와 동시에 폐기물로 이어지며, 사용된 자재 중 상당수가 재활용이 불가능한 합성 소재라는 점도 문제다.
홍보용 브로슈어와 포스터는 전시 기간보다 더 짧은 수명을 가진다. 종종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교체되거나, 디자인이 ‘SNS 감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제작되기도 한다. 이처럼 ‘감각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마케팅이 ‘지속 가능한 소비’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팝업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성과를 내기 위해 ‘시선을 끌 수 있는 물건’을 우선시하게 되고, 그 결과 짧은 수명의 굿즈들이 무분별하게 생산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제로웨이스트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제로웨이스트를 텀블러 사용이나 장바구니 지참 같은 개인의 실천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제로웨이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데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를 함께 생각하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시회와 문화 체험 공간은 ‘의식 있는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중요한 접점이 될 수 있다.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오히려 일회성 쓰레기의 온상이 되고 있는 지금,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브로슈어를 QR코드로 대체하거나, 굿즈를 디지털 콘텐츠로 전환하고, 포장 없는 굿즈 제공을 기본값으로 삼는 등 실질적인 대안은 충분히 존재한다.
이제는 ‘예쁘고 감각적인’ 디자인보다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제로웨이스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그 실천은 문화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술과 환경은 공존할 수 있다
환경을 위한 변화는 불편함을 수반할 수 있다. 무언가를 덜 만들고, 덜 배포하며, 소비자의 반응을 고려해 신중하게 디자인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없이는 지속 가능한 문화 산업도 불가능하다.
예술은 본래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환경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예술이 필요하다. 미술관, 전시회, 팝업스토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면, 전시는 단지 감상으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실천을 촉진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작은 포스터 하나, 브로슈어 한 장, 굿즈 하나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우리가 무심코 받아 든 그것이 결국 쓰레기가 되는 순간, 그것은 예술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결과가 된다. 앞으로는 감동만큼의 책임을 함께 나누는 전시 문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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